221007, 서촌 '무목적'에서, 최보람 작가님 개인전 <마음의꽃 心の花>
약속 시간까지 4시간. 예정에 없이 즉흥적으로 향한 발걸음, #무목적 에 도착했다. 그리고, 만났다.
#최보람작가님 의 두 번째 전시,
#마음의꽃 #心の花
낯선 곳이라 문을 연 나도 놀라고, 갑자기 들어온 나를 보고 작가님도 놀라고. 작가님이 주신 전시 소개글을 먼저 읽었다. 글 안에는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이 작가님의 분위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름과 마음, 작품을 안내하는 친절함. 그 흔한 인스타 홍보 흔적도 없다. 작가님이 어떤 분인지 선명해지면서, 가까워지고픈 마음이 들었다.
1. 작가님의 전시에서 가장 큰 포인트는 '종이, 연필, 지우개' 이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화려한 작품을 접하기 이전에 우리가 작품이든 아니든 다양한 모습에서 접하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 작가님은 반드시 필요한 기본 재료를 잡는 것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시작점으로 잡으신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처음 그림이라는 것을 접할 때에, 손이 무언가를 쥐었을 때에, 처음으로 새하얀 도화지를 마주했을 때에, 다양한 길을 걸어온 작가님이 다시 처음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작품들을 그려낼까, 라는 물음을 안았을 때 , 눈 앞에 펼쳐진 이런 작품들이지 않을까 싶다.
2. 언제나 생각하지만 작품 수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하나의 작품이어도 내가 작품 너머 그 시간과 마음을 뚫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 있으면 된다. 마음의 꽃, 이 전시가 그랬다. 작가님의 그은 이 선, 작가님이 지웠을 어느 여백, 그 순간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3. 작품들이 재미있다. 보통 잘 보이고 싶은 것에 손을 덧대지만,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연필이니 되려 하얀 색을 보여주려면 손을 그곳에 '덜' 대어야 한다. 바탕을 칠하고 칠하고 지우고 지움으로써 '하얀 본체'를 부각시킨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이란 말인가. 나는 이런 포인트를 찾아낼 때 정말 그 순간의 기쁨이 짜릿하다.
4. 사진은 내가 주로 끌렸던 부분들. 작가님이 어떤 결로 이 어둠을 몇 번이고 덧댔을지 상상할 수 있고, 어떻게 이 하얀 공간을 칠하고 싶은 유혹을 참았을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때요, 작가님, 진짜 그러셨는지요?
5. 마치 옛날 필름을 보는 것과 같은 작가님의 작은 파도 시리즈는 신기하게도 연필로만 칠한 건데도 이 어푸르스름한 바다의 시간대가 언제인지 상상하게 한다. 전시 관람 후 잠시 나누었던 작가님과의 대화에서도 공감했듯, 흑백은 가장 많은 색을 품는다. 그래, 이준익 감독님 작품 '자산어보'처럼. 흑백은 가장 눈이 부시며 모든 색을 볼 수 있는 마법의 색이다. 이 작품들에서 나는 달이 뜨기 전 푸르스름한 바다를 보았다. '명장면'이 시작하기 직전의 순간, 그 절정의 장면이 일어나기 직전의 가장 설레는 순간을 그려내는 것에 대한 기쁨, 그 순간을 내가 보았다는 행복, 그것을 아는 이를 사랑한다.
6. 작품을 모두 보고 나서, 이 작가님은 정말 기본적으로 가운데 뿌리 박힌 마음의 힘이 긍정적이고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고 있구나 느꼈다. 아무리 어둠을 어둠으로 칠할 지라도 어떠한 작품에서도 완전한 어둠은 없으며, 심지어 그 어두운 색마저도 따스하고 포근한 어둠으로 그려낸다. 고난의 시간이 스쳤을 듯한 어둠 속 연필 선이 있을지라도 그게 종이날처럼 자신을 베어내진 않는다. 본성이 포근하고 자신의 어둠 위에서 둥실둥실 놀 줄 아는 사람이 그린 그림 같다. 작가님은 진짜 그런 분이실까, 궁금하다.
7. 난 그림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들에 고민은 있을지라도 고통스럽진 않은, 그마저도 사랑한 만든 이의 마음이 물씬 묻어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8. 나는 가끔 '요즘 전시'들이 어지럽다. 소리가 없어도 시끄럽고, 색이 화려해도 외롭고, 색이 없다 해도 날카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 만난 이 따스함이 너무 귀하다. 최보람 작가님을 응원하고 싶다.
🙌'숨'의 인스타에도 놀러오세요. 주로 주접을 떱니다.
https://www.instagram.com/ssoomm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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